2019. 10.


도시가 만든 선 위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연작을 통해 드로잉의 속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신호를 기다리며 연석 위에 서 있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비계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선 위에 발을 딛고 있다. 그리고 그 풍경을 내리누르는 콘크리트 벽의 무게를 상상한다. 연약한 선 위에서 현재를 견디고 있다는 감각이 무언가를 표현하도록 추동한다. <횡단보도> 연작 속 어둠은 내가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이자 마음의 풍경이다.

<임시대기> 드로잉 연작은 사고와 재난을 담은 보도 사진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과정을 흔적으로 남긴 것이다. 아이폰으로 SNS 뉴스 계정을 확인하며 위태로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손끝으로 넘기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읽고, 연민과 같은 자족적인 태도를 버리고 나는 무고하지 않다는 감각을 훈련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타인의 고통에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숙고하고 사색해야함을 유념한다. <임시대기>연작 드로잉은 이러한 지침을 되풀이해 익히는 과정이다. 지나칠 수 없는 보도 사진과 영상을 보고 그리고 지운 뒤 다시 그린다. 주저하지 않고 나아간 선과 버벅거린 흔적이 남는다.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 흑연의 뼈대가 남아 그리는 동안의 궤적을 돌아 볼 수 있다.

동시에 연필로 선을 긋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남은 흔적을 이용한 드로잉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드로잉을 이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예술가로 사는 법>은 ‘예술가’라는 일은 무엇이며 나는 작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단상들을 적은 작업노트를 소재로 했다. 한 개의 종이 위에 작업노트 속 글씨와 그림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책장이 넘어가는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이 작업은 지금을 통과하며 겪고 있는 문제를 종이 위에 남겨서 생각의 궤적을 기록하려는 동기에서 비롯한다.

연필은 종이위에서 우연적인 효과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그리는 순간의 태도를 투명하게 드러낸다. 내가 바라보는 도시 풍경과 보도 사진, 작가란 무엇인가에 관한 단상을 연필로 그리고 기록한 후 되돌아보며 내가 어떤 고민과 생각으로 시간을 견뎌왔는지 더듬어 본다. 나는 작업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일을 향한 기대와 걱정, 나를 둘러싼 풍경을 연필로 그려서 마음의 경로를 남긴다. 생각이 나아가는 과정은 흔들리고 뒤집히며 이러한 움직임이 종이 위에 연필선을 긋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남은 자국으로 드러난다. 드로잉은 종결 없이 진행되는 생각의 고리를 나타내기 위한 매체라고 믿으며 그 가능성 속에서 나의 현재를 남기고 싶다.
  
                                                                                                                                        2020. 06.
                                                                                                                                            홍도연